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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속 풍경

오늘은 어디에도 쫓기지 않고그저 자연이 허락하는 속도에 나를 맡기기로 했다.해마다 이맘때면 철컥 닫혀 있던 간척지의 문이 열린다.모내기가 끝나가는 넓은 들판,그 옆을 따라 흐르듯 이어진 길 위에서나는 차를 멈췄다.사람의 손이 닿지 않은 길가,쉼터 의자마저 푸르게 삼켜버린 풍경. “조금 쉬어가도 괜찮아.” 의자를 접고 매트를 깔고조용히 누워 눈을 감았다.무언가를 해야 한다는 압박 없이,어디론가 가야 한다는 목적 없이 세상과 단절된 듯한 그 자리에서나는 오롯이 자연 속에 누웠다.창문을 조금 내리니바람이 풀잎을 스치는 소리,새들이 지저귀는 고요한 울림,그 모든 것이 말없이 속삭이는 듯했다. 그저 있는 그대로의 나를 허락해주는 시간.풀 내음은 코끝에 맴돌고,노트북 화면은 켜져 있지만손은 멈춘 채마음만이 조..

세월을 말아 올리는 곳오랜만에, 참 오랜만에옛 단골 미용실에 들렀습니다.큰아이 초등학생이던 시절,머리를 다듬던 그곳.그때는 참 자주 찾았던 단골집이었죠.동네 사랑방으로 재래시장 사람들과 하하호호 웃음이 오가던 작은 미용실. 시간이 그대로 멈춘 풍경, 변한 건 우리뿐오늘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2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그대로인 풍경에 마음이 먼저 멈춰 섰습니다.벽에 걸린 거울도,파마약 통이 가득한 롤카트도,허리 높이의 작은 장식장과TV에서 흘러나오는 뉴스까지도마치 시간이 머무는 듯한 공간이었어요.어르신들이 채운 의자, 바뀐 풍경예전엔 엄마 손잡고 온 아이들과파마를 말던 중년 여성들로 북적였던 이곳.이젠 머리 희끗한 어르신 손님들이조용히 자리를 채우고 계셨습니다.말수는 줄었고,대신 고개 끄덕이며 마주보는서로의..

안성팜랜드 여름코스모스오늘은 무언가를 '하려고'가 아니라그냥 '걸어보려고' 안성팜랜드에 왔습니다.하늘은 맑고, 햇살은 따가운무심한 듯 피어 있는 여름 코스모스가먼저 나를 반겨주었어요.아무 말 하지 않아도 괜찮은 날누군가와 오지 않아도,누구를 기다리지 않아도,이 길은 나 혼자 걸어도 충분히 아름다웠습니다.사방에 가득 피어 있는 분홍빛 코스모스들.바람결 따라 고개를 흔드는 그 모습이왠지 “괜찮아, 너도 피고 있어.” 하고 말해주는 것 같았지요.꽃은 어김없이 피어나고한때는 가을꽃이라 불리던 코스모스가이젠 이렇게 여름에도 피어납니다.계절이 바뀌어도,세상이 달라져도,꽃은 자기만의 때에 어김없이 피어나죠.우리의 삶도 그렇지 않을까요.남들보다 조금 늦게 피어도,다르게 피어도,그것이 아름답지 않다는 법은 없습니다. ..

뿌리 내리지 못한 모, 다시 심는 삶 지난주, 모내기를 했습니다.열심히 준비하고, 한 줄 한 줄 정성껏 심었지만뿌리를 제대로 내리지 못한 모들이누렇게 변해버렸습니다.언제나 그렇듯,자연은 계획대로 움직여주지 않았고우리는 다시 오늘, 그 논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다시 심는다는 것그저 또 모를 낸 것일 뿐인데묘하게 마음이 울컥합니다.한 번 실패했던 밭.하지만 포기하지 않고다시 씨앗을 심고, 뿌리를 기다리는 사람들.삶이란 어쩌면그 실패를 다시 견뎌주는 과정일지도 모릅니다.👨🌾 오늘, 아버지와 두 아들이 함께오늘 논에는아버지와 두 아들이 함께 서 있습니다.모를 건네고, 기계를 돌리고,손발을 맞추는 그 모습은단순히 농사일을 하는 장면 그 이상입니다.“흙을 밟는 이 시간, 우리는 서로의 마음도 함께 일구는..

오늘, 나에게 다정한 쉼표 하나 안성 ‘목적지9’에서의 오후언제부턴가 내 하루엔 ‘쉼’이라는 단어가 사라졌습니다.아이들은 다 컸지만, 마음은 여전히 분주했고달력엔 ‘해야 할 일’들만 빼곡히 채워졌지요.한참 전부터“배꽃 필 때 꼭 한 번 가봐야지.”했던 이곳을 결국 또 한 해 넘기고야 말았습니다.배꽃은 이미 지고 없지만,오늘은 그저 나를 위한 하루를 선물하기로 했습니다.안성의 조용한 숲과 커피 향이 흐르는 이곳,**‘목적지9 베이커리 카페’**로요.🌲 나무 사이를 걷는 일카페 앞에 펼쳐진 숲길.햇살은 따갑지만 바람은 가볍고,나무들은 오늘도 제자리에서 조용히 서 있었습니다.가끔은 말 한마디 없는 풍경이누군가의 위로보다 더 큰 힘이 됩니다.그저, 가만히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커피와 디저트, 그리고 나..

혼자 떠난 봄날의 목장 산책 혼자 떠난 여행길.나는 아그로랜드 태신목장을 찾았다.멀리서 보면 그저 ‘들판’ 같았지만,직접 밟아 본 이곳의 흙냄새와 바람, 꽃향기는도시에선 도무지 만날 수 없는 것이었다.🌸 “이렇게 많은 수레국화를 본 적 있으신가요?” 푸른빛 수레국화가 끝도 없이 펼쳐진 들판을 보며어디를 봐도, 누구를 찍어도 엽서 같은 풍경.사진으로 다 담기지 않아서 아쉽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말인가 보다.🌳 그늘 아래, 노트북을 꺼내놓고카페도, 의자도 아닌그늘 진 나무 아래 잔디 위에 자리를 잡았다.주섬주섬 가방에서 노트북을 꺼내 블로그 글쓰기 창을 연다.새소리, 바람 소리, 멀리서 들리는 아이들의 웃음소리.이런 소리들 속에서 글을 쓴다는 건생각보다 훨씬 차분하고 따뜻한 경험이다. 아그로랜드 태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