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쉼표가 필요한 날엔 (일상 에세이) (8)
마음 속 풍경

🌿 조용히 울고 싶었던 날, 나를 안아준 풍경그날은 특별히 더 힘든 일이 있었던 건 아니었다.하지만 이상하게도 마음이 가라앉았다.누구에게 말할 수도, 이유를 설명할 수도 없는데가슴 어딘가가 툭 하고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었다.그저, 조용히 어딘가에 가서 울고만 싶었다.나는 무작정 차를 몰아 들판이 보이는 외곽 길로 향했다.어디를 가겠다고 정한 것도 아니었고,누가 기다리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그저, 멈추고 싶었다.마음의 소음을 잠재울 수 있는 어딘가에서.햇살이 기울고 있던 시각,바람은 잔잔했고,들판엔 노란 들꽃들이 바람결에 가볍게 흔들리고 있었다.그 풍경 앞에 조용히 차를 세우고,창문을 내렸다.새소리, 풀 내음, 먼 데서 들려오는 이름 모를 곤충 소리.사람 하나 보이지 않는 들판 한가운데서나는 조용히 울었..

나는 누구에게 기대야 할까– 부모를 간병하며 나를 잃어가던 그 시간에어머니께서 요양병원에 계셨던 3년.그 시간은 단순히 ‘간병의 시간’이 아니라,하루하루를 조심스럽게 버텨야 했던 마음의 시간이었습니다.한창 코로나로 면회조차 되지 않던 때,나는 매일 아침마다 ‘오늘도 어머니는 우리를 기다리고 계시겠지’ 하는 마음에가슴이 조여왔습니다.그렇게 3년을 조용히, 애써 울지 않으며 보내고어머니는 결국 자식들 손을 잡지 못한 채 떠나셨습니다.🌫 간병은, 외로움과의 싸움이었다간병은 단지 몸을 돌보는 일이 아니었습니다.시간을 조율하고, 약을 챙기고, 진료를 기다리고,한 사람의 하루를 대신 살아주는 일이었죠.무엇보다 힘들었던 건,나도 아픈데 누구에게도 기대지 못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나는 누구에게 기대야 하지?”그 질문..

지나간 선택 앞에 멈춰 선 어느 날가끔 그런 날이 있습니다.평범한 오후, 커피 한 잔을 손에 쥐고 창밖을 바라보다가문득 오래전의 내가 떠오르는 날."그때 그 길이 아니었다면 지금 나는 어땠을까?""조금만 더 용기를 냈더라면… 지금은 달라졌을까?"돌아갈 수 없는 시간을 향해조용히 마음이 걸어갑니다.나만 그런 게 아니더라살아오며 수없이 많은 선택을 했습니다.때로는 큰 용기로, 때로는 어쩔 수 없는 현실로.그런 선택의 결과들이 지금의 나를 만든 줄은 알면서도,그때의 갈림길 앞에서 맴도는 마음은 누구에게나 남아 있나 봅니다.주저했던 순간,모른 척 넘긴 마음,무심코 놓아버린 기회들…그 모든 조각들이 시간이 지나‘되돌아봄’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찾아옵니다.하지만, 모든 선택엔 이유가 있었다그때는 그게 최선이었어요.아..

거울 앞의 나를 다시 사랑하는 법– 나이 들어도 예쁜 당신에게어느 날 거울을 보다가주름진 눈가에 오래 멈춰 서게 됩니다.어깨선은 조금 처지고,예전처럼 단단하던 허리도 말없이 부드러워졌습니다.머리칼 사이사이 드러나는 흰빛도이젠 염색보다 자연스러움이 먼저 떠오르죠.예전의 나와 지금의 나는 분명 조금 다르지만,그 다름이 꼭 나빠야 할 이유는 없습니다.🌿 변해가는 모습, 나빠진 게 아니라 ‘달라진 것’나이 든다는 건‘예뻐지지 않는 시간’이 아니라‘새로운 아름다움의 의미를 배워가는 시간’입니다.눈가의 주름은 많은 날들을 울고 웃으며 살아온 기록이고굽은 어깨는 누군가를 안아주고, 견뎌낸 흔적이며희끗한 머리카락은 지나온 세월을 그대로 증명해주는 빛입니다.그러니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그건 낯선 것이 아..

🤍 마음을 나눌 누군가가 그리운 날엔 50대 이후, 고독을 슬기롭게 건너는 법어느 순간부터,마음을 털어놓을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는 걸 느낍니다.아이들은 각자의 삶에 바빠졌고,남편과는 대화보다 침묵이 익숙해졌으며,오랜 친구들과는 자주 보지 않게 되었죠.가장 조용한 시간은,집 안이 아니라 마음 안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나만 이런 걸까?” 라는 생각이 들 때50대 이후의 여성들이 자주 느끼는 감정 중 하나는 ‘정서적 고립감’이라고 합니다.누군가에게 털어놓고 싶은 이야기가 있지만그 이야기를 정말 들어줄 사람이 없다는 외로움.사소한 이야기라도 공감받고 싶은데,“그런 걸로 왜 그래?” 하는 반응이 더 두려워아예 입을 닫아버린 적도 있었지요.하지만 잊지 마세요.‘말할 사람’보다 ‘들어줄 사람’이 더 필요한..

세월을 말아 올리는 곳오랜만에, 참 오랜만에옛 단골 미용실에 들렀습니다.큰아이 초등학생이던 시절,머리를 다듬던 그곳.그때는 참 자주 찾았던 단골집이었죠.동네 사랑방으로 재래시장 사람들과 하하호호 웃음이 오가던 작은 미용실. 시간이 그대로 멈춘 풍경, 변한 건 우리뿐오늘 문을 열고 들어섰을 때20년이 훌쩍 지난 지금도그대로인 풍경에 마음이 먼저 멈춰 섰습니다.벽에 걸린 거울도,파마약 통이 가득한 롤카트도,허리 높이의 작은 장식장과TV에서 흘러나오는 뉴스까지도마치 시간이 머무는 듯한 공간이었어요.어르신들이 채운 의자, 바뀐 풍경예전엔 엄마 손잡고 온 아이들과파마를 말던 중년 여성들로 북적였던 이곳.이젠 머리 희끗한 어르신 손님들이조용히 자리를 채우고 계셨습니다.말수는 줄었고,대신 고개 끄덕이며 마주보는서로의..

뿌리 내리지 못한 모, 다시 심는 삶 지난주, 모내기를 했습니다.열심히 준비하고, 한 줄 한 줄 정성껏 심었지만뿌리를 제대로 내리지 못한 모들이누렇게 변해버렸습니다.언제나 그렇듯,자연은 계획대로 움직여주지 않았고우리는 다시 오늘, 그 논 앞에 서게 되었습니다.🌱 다시 심는다는 것그저 또 모를 낸 것일 뿐인데묘하게 마음이 울컥합니다.한 번 실패했던 밭.하지만 포기하지 않고다시 씨앗을 심고, 뿌리를 기다리는 사람들.삶이란 어쩌면그 실패를 다시 견뎌주는 과정일지도 모릅니다.👨🌾 오늘, 아버지와 두 아들이 함께오늘 논에는아버지와 두 아들이 함께 서 있습니다.모를 건네고, 기계를 돌리고,손발을 맞추는 그 모습은단순히 농사일을 하는 장면 그 이상입니다.“흙을 밟는 이 시간, 우리는 서로의 마음도 함께 일구는..

오늘, 나에게 다정한 쉼표 하나 안성 ‘목적지9’에서의 오후언제부턴가 내 하루엔 ‘쉼’이라는 단어가 사라졌습니다.아이들은 다 컸지만, 마음은 여전히 분주했고달력엔 ‘해야 할 일’들만 빼곡히 채워졌지요.한참 전부터“배꽃 필 때 꼭 한 번 가봐야지.”했던 이곳을 결국 또 한 해 넘기고야 말았습니다.배꽃은 이미 지고 없지만,오늘은 그저 나를 위한 하루를 선물하기로 했습니다.안성의 조용한 숲과 커피 향이 흐르는 이곳,**‘목적지9 베이커리 카페’**로요.🌲 나무 사이를 걷는 일카페 앞에 펼쳐진 숲길.햇살은 따갑지만 바람은 가볍고,나무들은 오늘도 제자리에서 조용히 서 있었습니다.가끔은 말 한마디 없는 풍경이누군가의 위로보다 더 큰 힘이 됩니다.그저, 가만히 곁에 있어주는 것만으로도.☕ 커피와 디저트, 그리고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