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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속 풍경
노르웨이 산행 앞에서 멈춘 이야기 노르웨이에 도착한 막내는 다음 날 스타방에르로 이동해 오래도록 그리던 산행을 계획했습니다. 하지만 날씨는 마음 같지 않게 비를 뿌려 하루를 더 기다려야 했다고 합니다. 저도 사진으로 보면서 얼마나 기대에 부풀어 있었는지 모릅니다. 고즈넉한 부두와 형형색색의 건물들, 웅장한 산세가 한 폭의 그림 같아서 막내의 여정이 부러웠습니다. 드디어 맑아진 하늘 아래 막내는 산행을 시작했지만 길은 예상보다 훨씬 가파르고 험했다고 해요. 2시간쯤 오르고 나니 숨이 차오르고 발길이 떨려 더 이상은 나아갈 수 없다고 느꼈다고 합니다. “엄마, 그래도 내가 할 만큼은 해봤어. 더 오르고 싶었는데 위험할 것 같아서 멈췄어.” ..
🌿 수국 꽃길을 걸으며, 50대의 마음 어제는 수국이 활짝 핀 공원을 다녀왔습니다. 가끔은 잠시라도 복잡한 일상을 멈추고 싶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 꽃길만큼 좋은 위로가 없더군요. 흰색, 분홍색, 보라색 수국들이 온 공원을 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탐스러운 꽃송이들 사이에서 아이들은 아랑곳없이 뛰어다니고, 연인들은 서로 기대어 웃으며 사진을 찍고 있었어요. 또 어떤 이들은 조용히 개천을 따라 걸으며 이 여름을 마음에 담고 있었지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습니다. 이제 나는,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연인들의 설렘을 따뜻하게 응원하는 쉰다섯의 나이가 되었구나. 예전에는 꽃을 보면 그냥..
나이가 들수록 꽃이 더 좋은 이유 살다 보면 문득, 꽃이 이렇게 좋았나 싶은 순간이 찾아옵니다. 젊을 땐 스쳐 지나가던 작은 꽃송이가, 어느 날은 가만히 마음에 들어와 오래 머무르곤 하지요. 왜 나이가 들면 꽃이 더 좋아질까요? 🌿 1. 마음에 여유가 생기기 때문이에요 젊은 시절에는 해야 할 일과 책임으로 마음이 꽉 차 있어 주변을 둘러볼 틈이 없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삶의 속도를 조절하는 법을 배우면서 작은 것들을 바라보는 여유가 생깁니다. 그제야 꽃처럼 조용히 피어 있는 생명들이 비로소 눈에 들어옵니다. 🌱 2. 자연에 대한 감사가 커지기 때문이에요 꽃은 계절이 오면 어김없이 피고 집니다..
🧳 캐리어 속 커피 박스, 그 마음의 무게 “혼자 다니니까 자유로워서 좋아. 내가 가고 싶은 곳에 가고, 쉬고 싶을 때 쉬고…근데 엄마가 좋아할 것 같아서 커피 샀어.”막내의 말에 순간 울컥했다. 여행 중 엄마를 떠올렸다는 그 마음이, 이미 충분한 선물이었다.나는 무심히 말해버렸다.“왜 벌써 샀어, 한 달 내내 캐리어에 넣고 다녀야 할 텐데.”그 말에 아이는 서운해했다. 엄마가 좋아할 것 같아서 산 건데…💌 마음을 포장하는 법작은 상자 하나, 낯선 나라의 슈퍼마켓 진열대 앞에서‘엄마는 어떤 맛을 좋아할까’ 고민하며 골랐을 아들의 마음.그 마음에는 시간이 묻어 있고, 무게가 실려 있다.커피보다 더 따뜻한 사랑이 들어 있다.한 달 동안 짐 속에서 이리저리 굴러다닐지도 모르지만,그 상자는 귀국 후, 커피..
자두 한 박스에 담긴 사랑, 그리고 오늘의 다짐 아침에 도착한 택배 상자 하나. 뚜껑을 여니, 곱게 익은 자두가 수줍게 인사한다. 엄마가 손수 따서 보내신 여름의 선물. 하나, 둘 입에 넣어본다. 새콤한 맛에 눈이 찡하고, 그 안에 담긴 정성에 마음이 찡하다. 엄마는 아무 말 없이 늘 이렇게 마음을 전하신다. “자두 좀 보냈다. 익은 거 많으니까 얼른 먹어.” 짧은 말 안에 묻어난 그리움과 사랑. 냉장고에 넣고 며칠 두면 상할까 걱정이 되어 오늘은 자두 손질을 시작했다. 반은 착즙기로 갈아 시원한 주스를 만들고, 나머진 자글자글 끓여 자두 잼을 만들었다. 설탕을 조금 넣고, 약한 불에 오래도록 저었다. ..
말뫼의 인심, 그 따뜻한 한 조각의 빵 스웨덴 말뫼. 하루 종일 도시 곳곳을 걸으며 여행을 이어가던 아이는, 조용한 카페에 들어가 잠시 숨을 돌렸습니다. 땀이 마를 즈음, 테이블 위에 놓인 오렌지 조각이 담긴 쥬스 한 잔. 그리고 곧이어 나온 따뜻한 크루아상 하나. “엄마, 사장님이 나 예쁘다며 빵 하나 그냥 주셨어. 너무 감동이야.” – 말뫼에서 아들 웃음이 났습니다. 여행길에서 우연히 만난 따뜻한 손길 하나가 그 아이 마음에 얼마나 깊이 스며들었는지 느껴졌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아직은 따뜻하다는 걸, 타지에서 배운 겁니다. 그 한 조각의 빵엔 ‘당신은 괜찮은 사람이에요’라는 말 없는 응원이 담겨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낯선 곳에서 낯선..

🛒 마트에서 배운 자립의 한 걸음스무 살, 유럽의 거리에서 아들은 긴 여행을 시작했습니다.낯선 도시의 풍경도, 언어도 아직은 익숙하지 않지만그 아이가 가장 먼저 마주한 건 — 높은 물가였습니다.“엄마, 여기 물가 진짜 비싸. 마트 가서 생수랑 과일 샀는데 편의점보다 훨씬 싸! 너무 좋아.”물 몇 병, 과일 몇 알, 작은 간식 하나.그 소소한 장보기가 왜 이리도 마음을 찡하게 만드는 걸까요.언제부턴가,공사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돈 버는 일이 얼마나 힘든지 알게 된 아이는이제는 마트에서 가격표를 살피고, 가격을 비교하며 스스로를 챙깁니다.예전 같았으면 “엄마, 돈” 한마디였을 텐데요.“돈 아껴서 맛있는 거 사 먹겠다고”그 말 속엔 자신을 돌보려는 의지와,엄마의 마음을 헤아리는 따뜻한 배려가 담겨 있었어요..
코펜하겐에서 그리운 건, 따끈한 된장찌개 한 그릇낯선 도시, 낯선 언어, 낯선 풍경 속에서생각보다 자주 떠오르는 것은 바로 익숙한 음식이었습니다.유럽의 멋진 골목, 세련된 카페, 고풍스러운 건축물 앞에서도입안 가득 떠오른 건 매콤한 떡볶이, 깊은 국물의 된장찌개,그리고 언제 먹어도 좋은 김치찌개 한 숟가락이었습니다.아들은 코펜하겐의 거리에서 연어 요리를 앞에 두고도 멋진 바에서 맥주 한잔 마시면서도“엄마, 라면이 너무 먹고 싶어”라며 웃으며 메시지를 보냈습니다.익숙함이 그리워질 때지금껏 당연하게 여기던 것들이멀리 떨어져 있을 때 비로소 ‘소중한 것’이 된다는 말.그 말을 오늘, 다시 마음속에 새겨봅니다.세련된 요리 대신, 하얀 밥에 된장찌개 한 숟갈 떠서 김치 하나 올려 먹던그 평범한 저녁이 이렇게 그리..
혼자가 된 여행길, 그래도 너는 괜찮아기대하던 여행의 한 장면이 갑자기 사라졌을 때,마음속 설렘은 무너지고, 낯선 도시의 공기는 유난히 차갑게 느껴집니다.같이 걷기로 했던 사람이아무런 말 없이 대화방을 나가버렸다는 그 한 문장은엄마인 나에게도 조용한 충격이었어요.이유라도 들을 수 있다면 괜찮을 텐데,남겨진 쪽은 늘 이유를 스스로 해석해야만 하죠.혼자 그 짐을 감당하며, 계획했던 시간들을 다시 펼쳐보는 거예요.엄마는 안다.기대가 무너지는 건 늘 조용히, 갑작스럽게 일어난다는 걸.그래서 더 마음이 아픈 거라는 걸.하지만 , 너는 괜찮을 거야.지금은 속상하고 허탈하고 억울한 마음이 들지 몰라도,여행은 늘 예상하지 못한 방향으로 우리를 데려다주니까.혼자가 된 이 하루가, 너의 내면을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 수 ..
여행이 우리에게 남기는 것들때로는 낯선 도시의 공기를 마시는 것만으로도오래 묵은 감정들이 풀리는 기분이 듭니다.우리는 그동안 너무 오랫동안 같은 공간에 머물며스스로를 닫아 두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여행은 우리를 열게 합니다.모르는 골목, 익숙하지 않은 언어, 새로운 풍경 앞에서우리는 어느새 겸손해지고, 조금 더 솔직해지고,무언가를 ‘잘 해야 한다’는 마음을 내려놓게 되죠.🍦 달콤한 아이스크림 하나에 웃게 되고,햇살 좋은 거리에서 마신 맥주 한잔이마음을 조금 더 유연하게 만들어 줍니다.그리고 문득 든 생각은…‘이런 평범한 순간들이 참 고맙다’는 것.카메라에 담긴 건 풍경만이 아니에요그날의 기분, 함께 웃던 표정, 잠깐 멈춰 선 시간까지도함께 담기게 됩니다.나중에 사진을 다시 보면그 감정들이 고스란히 되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