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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속 풍경
스웨덴에서 건너온 배 네 개 스웨덴에서 여행 중인 막내에게서 사진과 함께 연락이 왔다. "엄마, 유럽 배는 모양도 다르고 맛도 달라. 엄마 꼭 먹어보게 해주고 싶어." 순간 웃음이 났다. 평소에도 과일을 좋아하던 아이였지만, 그 마음이 참 귀여웠다. 나는 말했다. “여행 중엔 실컷 먹고 와. 무겁고 번거롭잖아.” 그랬더니, 아이는 살짝 서운한 말투로 대답했다. “그래도 네 개만 사갈게. 우리 식구 넷이서 하나씩 먹게 하려고.” “엄마, 그냥 맛있다는 걸 나 혼자만 아는 건 아깝잖아.” – 스웨덴 거리에서 배를 들고 선 막내의 말 그 순간, 아이가 어른이 되어가고 있다는 걸 다..
스웨덴에서 날아온 쿠션 커버 한 장 며칠 전, 스웨덴을 여행 중인 막내에게 “패브릭 쿠션 커버 하나 사다 줄 수 있니?”라고 부탁을 했습니다. 북유럽 특유의 차분하고 따뜻한 감성이 담긴 그 패턴들이 요즘 따라 자꾸 눈에 밟혔거든요. 그랬더니 얼마 지나지 않아 카톡으로 사진이 여러 장 날아왔습니다. 매장 안을 둘러보며 사이즈와 디자인, 원단 질감을 카메라에 담아 정성껏 보내온 막내의 모습이 눈앞에 그려졌습니다. “엄마, 이건 45x45cm고 린넨 소재야. 색은 이런데, 다른 것도 봐줄까?” “이건 할인 중이래. 근데 엄마 스타일 아니면 더 찾아볼게.” 그저 "응~ 예쁜 걸로 하나 골라줘" 했던 ..
🕊 닿지 않는 밤, 그럼에도 우리는 사랑을 보냅니다 어젯밤, 유난히 깊은 잠을 이루지 못했습니다. 여행 중인 막내와 연락이 닿지 않았거든요. 카톡도, 전화도 아무 응답이 없자 괜히 안 좋은 상상이 마음을 들쑤시듯 스쳐갔습니다. 혹시 아픈 건 아닐까? 길을 잃은 건 아닐까? 혼자 외로움에 떨고 있는 건 아닐까… 그저 핸드폰을 숙소에 두고 외출한 거라는 걸 알고 나서야 겨우 안도의 숨을 쉬었지만, 그 몇 시간 동안 엄마인 나는 마음 한구석이 뚫린 듯 서성이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며칠 전 강의하러 갔던 화성청소년비전센터가 떠올랐습니다. 자유를 잃은 공간. 인터넷도, 휴대폰도, 세상과 연결된 어떤 것도 허락되지 않은 채 닫힌 문 안에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청..
그때의 다짐과 지금의 너여행을 하며 막내가 내게 물었다. “엄마, 나 키우는 거 힘들었어?”아들 셋을 키운다는 건 언제나 풍성한 이야기와 예측할 수 없는 파도가 함께 있는 삶이었다. 같은 부모, 같은 집에서 자라는데도 아이들은 저마다 다른 얼굴로 사춘기를 맞았다.둘째는 사춘기가 유난히 거칠고 깊었다. 중학생때 둘째는 머리를 하얗게 밀고 들어오기도 하고, 공부는 먼 나라 얘기였다. 사고만 치지 말아달라고 기도했었다. 그 시절의 나는 매일 작게 부서지는 마음으로 하루를 버티곤 했다.그 모든 것을 막내도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어린 막내가 형과 나 사이에 흐르던 긴장과 상처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젠 돌이켜보면 마음이 아프다.어느 날 막내가 아주 조그맣게 말했었다. “나는… 나는 절대로 엄마를 힘들게..
다시 일어난 아이를 바라보며 어제는 산행을 포기했다는 막내의 소식에 괜히 마음 한편이 서운했습니다. 멋진 풍경을 끝까지 보지 못했다는 아쉬움보다도, 그 순간 아이가 느꼈을 자책과 주저앉은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왜 거기까지 갔는데 포기했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든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런데 오늘 다시 사진이 도착했습니다. 어제 그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 더 단단한 마음으로 산을 오르고, 마침내 정상에서 두 팔을 활짝 벌린 그 모습. 그 사진을 보는 순간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아이의 등을 떠밀어 무조건 올라가라고 하는 것보다, 그가 멈추고 싶을 때 멈출 수 있도록 지켜보는 일이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부모라..
처음의 두근거림, 50대의 새로운 도전 다음 주 월요일, 저는 화성청소년비전센터로 첫 외부 강의를 나갑니다. 새로운 공간, 새로운 청중, 그리고 새로운 기회. 50대에 접어든 지금, 이런 도전이 저에게 다시 살아있음을 느끼게 해줍니다. 생각해보면 누구나 처음은 두렵고 설레는 법이죠. 아무리 준비를 해도 완벽할 수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마음 한편에서는 작은 떨림과 기대가 공존합니다. “시작이 반이라고 하잖아요. 두려움마저도 소중한 첫걸음입니다.” 이번 강의가 저에게도, 그리고 이곳에서 만날 청소년들에게도 작은 용기와 가능성의 씨앗이 되기를 바라봅니다. 새로..
노르웨이 산행 앞에서 멈춘 이야기 노르웨이에 도착한 막내는 다음 날 스타방에르로 이동해 오래도록 그리던 산행을 계획했습니다. 하지만 날씨는 마음 같지 않게 비를 뿌려 하루를 더 기다려야 했다고 합니다. 저도 사진으로 보면서 얼마나 기대에 부풀어 있었는지 모릅니다. 고즈넉한 부두와 형형색색의 건물들, 웅장한 산세가 한 폭의 그림 같아서 막내의 여정이 부러웠습니다. 드디어 맑아진 하늘 아래 막내는 산행을 시작했지만 길은 예상보다 훨씬 가파르고 험했다고 해요. 2시간쯤 오르고 나니 숨이 차오르고 발길이 떨려 더 이상은 나아갈 수 없다고 느꼈다고 합니다. “엄마, 그래도 내가 할 만큼은 해봤어. 더 오르고 싶었는데 위험할 것 같아서 멈췄어.” ..
🌿 수국 꽃길을 걸으며, 50대의 마음 어제는 수국이 활짝 핀 공원을 다녀왔습니다. 가끔은 잠시라도 복잡한 일상을 멈추고 싶을 때가 있는데, 그럴 때 꽃길만큼 좋은 위로가 없더군요. 흰색, 분홍색, 보라색 수국들이 온 공원을 가득 메우고 있었습니다. 탐스러운 꽃송이들 사이에서 아이들은 아랑곳없이 뛰어다니고, 연인들은 서로 기대어 웃으며 사진을 찍고 있었어요. 또 어떤 이들은 조용히 개천을 따라 걸으며 이 여름을 마음에 담고 있었지요. 그 모습을 가만히 바라보는데 문득 이런 생각이 스쳤습니다. 이제 나는, 아이들이 노는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고, 연인들의 설렘을 따뜻하게 응원하는 쉰다섯의 나이가 되었구나. 예전에는 꽃을 보면 그냥..
나이가 들수록 꽃이 더 좋은 이유 살다 보면 문득, 꽃이 이렇게 좋았나 싶은 순간이 찾아옵니다. 젊을 땐 스쳐 지나가던 작은 꽃송이가, 어느 날은 가만히 마음에 들어와 오래 머무르곤 하지요. 왜 나이가 들면 꽃이 더 좋아질까요? 🌿 1. 마음에 여유가 생기기 때문이에요 젊은 시절에는 해야 할 일과 책임으로 마음이 꽉 차 있어 주변을 둘러볼 틈이 없었습니다. 시간이 흐르고 삶의 속도를 조절하는 법을 배우면서 작은 것들을 바라보는 여유가 생깁니다. 그제야 꽃처럼 조용히 피어 있는 생명들이 비로소 눈에 들어옵니다. 🌱 2. 자연에 대한 감사가 커지기 때문이에요 꽃은 계절이 오면 어김없이 피고 집니다..
🧳 캐리어 속 커피 박스, 그 마음의 무게 “혼자 다니니까 자유로워서 좋아. 내가 가고 싶은 곳에 가고, 쉬고 싶을 때 쉬고…근데 엄마가 좋아할 것 같아서 커피 샀어.”막내의 말에 순간 울컥했다. 여행 중 엄마를 떠올렸다는 그 마음이, 이미 충분한 선물이었다.나는 무심히 말해버렸다.“왜 벌써 샀어, 한 달 내내 캐리어에 넣고 다녀야 할 텐데.”그 말에 아이는 서운해했다. 엄마가 좋아할 것 같아서 산 건데…💌 마음을 포장하는 법작은 상자 하나, 낯선 나라의 슈퍼마켓 진열대 앞에서‘엄마는 어떤 맛을 좋아할까’ 고민하며 골랐을 아들의 마음.그 마음에는 시간이 묻어 있고, 무게가 실려 있다.커피보다 더 따뜻한 사랑이 들어 있다.한 달 동안 짐 속에서 이리저리 굴러다닐지도 모르지만,그 상자는 귀국 후, 커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