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눈으로 따라가는 북유럽

다시 일어난 아이를 바라보며

루체 2025. 7. 3. 12: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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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일어난 아이를 바라보며

다시 일어난 아이를 바라보며

어제는 산행을 포기했다는 막내의 소식에 괜히 마음 한편이 서운했습니다. 멋진 풍경을 끝까지 보지 못했다는 아쉬움보다도, 그 순간 아이가 느꼈을 자책과 주저앉은 마음을 헤아리지 못하고 “왜 거기까지 갔는데 포기했을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든 것이 부끄러웠습니다.

그런데 오늘 다시 사진이 도착했습니다. 어제 그 자리에서 다시 일어나, 더 단단한 마음으로 산을 오르고, 마침내 정상에서 두 팔을 활짝 벌린 그 모습. 그 사진을 보는 순간 가슴이 뭉클해졌습니다.

아이의 등을 떠밀어 무조건 올라가라고 하는 것보다, 그가 멈추고 싶을 때 멈출 수 있도록 지켜보는 일이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는 걸 알았습니다. 부모라는 이름으로 때로는 조바심이 나고, 미리 결과를 걱정하고, 혹은 내가 기대한 모습과 다르다고 속상해하지만, 결국 아이의 길은 아이의 것이더군요.

하룻밤 사이 아이는 더 단단해졌고, 더 넓은 세상을 품을 수 있게 자라 있었습니다. 스스로 다시 도전할 마음을 낸 그 용기가, 무엇보다 대견했습니다. 부모는 종종 자식이 실패 없이 잘해 주길 바라지만, 아이들은 넘어지고 주저앉는 순간에야 비로소 배울 수 있는 것들이 있나 봅니다.

나는 이제야 조금씩 배웁니다. 내 마음이 원하는 대로 아이의 길을 재단하지 않는 연습을, 기대와 응원의 경계를 부드럽게 넘나들며 지켜보는 연습을. 그리고 아이가 다시 일어나 제 자리로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 주는 연습을.

오늘 그 아이의 사진을 보며 깨달았습니다. 인생의 가장 아름다운 순간은 성공의 순간이 아니라, 포기했던 마음을 다시 일으켜 세워 나아가는 그 시간이라는 것을.

당신도, 그리고 나도, 우리 모두 그렇게 살아가고 있지요.

멀리 북유럽의 산 정상에서 두 팔을 벌린 아이를 바라보며, 쉰이 훌쩍 넘은 나도 오늘 또 한 번 배웁니다. 아이는 언제나 부모의 스승이 되어 줍니다.

그리고 이제, 조금은 알 것 같습니다. 자식이 어디에 있든, 무엇을 하든, 그 모든 여정을 사랑으로 바라보는 일. 그것이 부모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역할이자, 가장 깊은 행복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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