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의 눈으로 따라가는 북유럽

그때의 다짐과 지금의 너

루체 2025. 7. 4. 19:46
반응형

 

 

그때의 다짐과 지금의 너

여행을 하며 막내가 내게 물었다. “엄마, 나 키우는 거 힘들었어?”

아들 셋을 키운다는 건 언제나 풍성한 이야기와 예측할 수 없는 파도가 함께 있는 삶이었다. 같은 부모, 같은 집에서 자라는데도 아이들은 저마다 다른 얼굴로 사춘기를 맞았다.

둘째는 사춘기가 유난히 거칠고 깊었다. 중학생때 둘째는 머리를 하얗게 밀고 들어오기도 하고, 공부는 먼 나라 얘기였다. 사고만 치지 말아달라고 기도했었다. 그 시절의 나는 매일 작게 부서지는 마음으로 하루를 버티곤 했다.

그 모든 것을 막내도 옆에서 지켜보고 있었다. 어린 막내가 형과 나 사이에 흐르던 긴장과 상처를 보고 무슨 생각을 했을까, 이젠 돌이켜보면 마음이 아프다.

어느 날 막내가 아주 조그맣게 말했었다. “나는… 나는 절대로 엄마를 힘들게 하지 않을 거야.” 그 어린 얼굴에 다짐 같은 표정이 스쳐갔던 게 아직도 생생하다.

그때는 그 말이 조금은 고마웠고, 조금은 미안했다. 형이 겪어야 했던 감정의 폭풍이, 동생에게는 ‘엄마를 지켜야 한다’는 의무처럼 남은 건 아닐까 걱정이 됐다.

그리고 시간이 흘러, 이제 셋 다 훌쩍 커버렸다. 둘째는 사춘기를 지나 부드러워졌고, 뒤늦게 공부도 열심히 하고있다. 막내는 약속이라도 지키듯 언제나 밝고 다정한 아이로 자라주었다. 형제들은 지금 서로를 존중하고, 옛날 이야기도 웃으며 나눌 만큼 여유가 생겼다.

돌아보면 그 시절의 다짐이 꼭 필요했던 방패였을지도 모른다. 어린 마음에 스스로를 단단히 지키기 위한 작은 약속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 약속을 조금 놓아도 좋다고 말해주고 싶다. 막내, 너는 언제나 충분히 좋은 아들이고, 더 이상 무언가를 증명하듯 애쓰지 않아도 된다고.

아들 셋을 키우며 배운 게 있다면, 누구도 완벽하지 않고, 누구도 한 가지 모습으로만 성장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서툴고 거친 시간도 결국은 지나가고, 사랑은 결국 남는다.

지금 셋 모두가 제자리를 찾아 성숙해진 모습을 보면, 그 시절 우리가 함께 견뎌낸 것들이 얼마나 귀중했는지 새삼 느낀다.

그리고 오늘도 감사하다. 그때 그 다짐이 있었기에, 지금의 단단하고 따뜻한 막내가 있다는 사실이. 참 잘 자라주었구나. 그 마음으로 오늘도 아이들을, 그리고 예전의 나를 조용히 안아본다.

반응형